이 글을 쓰기까지 — 20년, 그리고 지난 1년
이 글은 가이드가 아닙니다. 지난 7월 1일부터 4일까지, 한 분의 손님과 실제로 보낸 나흘의 기록입니다. 그 전에 제 이야기를 조금만 하겠습니다. 이 나흘이 저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설명하려면 필요한 배경입니다.
2006년 마닐라에서 PGAP 투어링 프로 테스트를 통과했습니다. 2008년 인천 연수구에서 예일골프아카데미를 열었고, 2012년 앙겔레스에서 Jang's 골프아카데미, 2014년 JS 골프아카데미를 거쳐, 2022년 베버리 C.C 클럽 프로로 활동하며 지금의 iClarkGolf 아카데미가 됐습니다. 2024년부터는 프라데라 C.C 클럽 프로로 일하며 iclarkgolf.com과 네이버 카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년 5월, 건강에 큰 문제가 생겨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치료를 받았고 9월에는 수술까지 했습니다. 골프채를 놓고 병원을 오가던 1년이었습니다. 그 회복 기간에 시작한 일이 이 웹사이트를 직접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몸이 회복되는 속도만큼 사이트도 조금씩 만들어졌습니다.
사이트를 새로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의가 세 건 들어왔습니다. 1~2주 과정을 원하시는 여성 골퍼 한 분, 1주일을 놓고 장고 중인 남성 한 분, 그리고 4일을 확정하신 남성 한 분. 이 한 분의 고객은 저에게 희망의 신호였습니다. 저는 하루 먼저 클락에 들어가 숙소를 정비하고 맞이할 준비를 했습니다.
Day 1 — 공항 BAY 5 기둥, 그리고 첫 라운드
클락 공항의 BAY 5가 적힌 기둥. 저와 손님들의 미팅 장소입니다. 이분과는 사전에 많은 대화를 나눈 것도, 사진 한 장 주고받은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쉽게 서로를 알아봤습니다. 언제나처럼 마트에 들러 소주와 맥주를 사고, 숙소까지 한 시간 남짓 차 안에서 대화가 시작됐습니다.
나이는 50대, 구력 10년. 한두 번 70타대를 쳐본 적이 있고, 문제는 퍼팅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잠시 생각했습니다. 퍼팅이 얼마나 문제이길래 전지훈련까지 올까. 입스가 온 걸까. 알고 보니 클락은 10년 전에 와서 골프도 하고 사업 투자도 했던 곳이라, 이곳 환경이나 조건을 미리 설명할 필요도 없는 분이었습니다.
숙소에 도착해 로컬 방을 안내하자 '역시나' 하는 얼굴이었습니다. 산미구엘 맥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직업도 나옵니다. 치과의사. 참 이상한 일입니다. 제 고객들은 의사가 대부분입니다.
공항에서 오는 날이 곧 골프 치는 날입니다. 8시에 아침을 먹고 바로 골프장으로 향했습니다. 숙소에서 프라데라까지는 5분 거리입니다. 먼저 연습장에서 스윙을 점검했습니다. 몸과 팔을 같이 돌리는 전형적인 원플레인(one plane) 스윙. 통통하고 아담한 체형의 남성에게 잘 맞는 스윙 형태입니다. 그립이 엉성했지만, 그런데도 볼이 올바르게 가고 있어서 일단 내버려 두었습니다. 프로는 고칠 것과 놔둘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한 시간 연습 후 라운드를 나갔습니다. 연습장 바로 옆 피나투보 코스입니다. 프라데라는 원래 27홀이었는데 작년 6월 9홀을 추가해 36홀이 됐습니다. 나중에 만들어진 코스가 피나투보 산을 마주하고 있어 붙은 이름입니다. 거리가 상당하고 어렵게 만들어진 코스인데, 처음 치는데도 제법 적응을 잘했습니다.
퍼팅이 매번 짧게 떨어지긴 했습니다. 그런데 입스는 아니었습니다. 시키면 그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입스는 몸이 명령을 거부하는 것인데, 이분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원인은 다른 데 있다고 판단하고, 첫날은 퍼팅과 숏게임에 매달려 가르쳤습니다.
Day 2 — 옆구리 하나 바꿨더니 40야드
둘째 날도 피나투보 코스로 예약이 잡혔습니다. 프라데라에서 맨 처음 만들어진 코스는 아라얏이라고 부르는데, 바타안 쪽에 있는 산의 이름입니다. 그 산을 넘으면 서쪽으로 수빅 바다이고, 산 남쪽 끝자락이 마닐라 베이입니다. 아쉽게도 이 코스는 토요일 토너먼트 준비로 막혀 있었습니다.
역시 8시에 아침을 먹었습니다. 김치찌개, 계란과 가지로 부친 전, 그리고 여주무침 — 여주는 이곳의 흔한 야채인데 쌉쓰름해서 약처럼 먹어야 합니다. 처음 먹는 사람은 글쎄, 하는 맛입니다. 우리 꽁치 같은 생선 '깔롱공' 튀김을 매운 땡초 간장에 찍어 먹으면 입맛이 살아납니다. 배추김치까지, 서울의 집보다 걸게 차려집니다. 로컬 숙소가 어떤 곳인지는 숙소 가이드 글에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연습장에서 본론에 들어갔습니다. "어차피 당신은 원플레인 스윙이니, 다운스윙에서 왼쪽 옆구리를 잡아틀면서 체중을 이동시켜야 합니다." 어려운 동작인데 제법 잘 해냈습니다. 그리고 그 동작 하나로 비거리가 40야드 더 나가자, 깜짝 놀라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프로 생활을 하며 여러 번 봤지만, 저 표정은 볼 때마다 좋습니다.
라운드에서는 오늘의 과제를 정해줬습니다. 왼쪽 옆구리 잡아채기, 그리고 클럽 헤드는 뒤에 끌려오다가 한참 뒤에 공을 맞히는 느낌. 티잉그라운드에 올라가면 대개는 다 잊어버리고 오래된 자기 습관대로 치게 됩니다. 그런데 이분은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절반만 따라 해도 결과는 확 달라집니다. 평소 드라이버가 220미터였다는데, 280야드짜리 샷이 나오니 250미터 이상이 날아갔습니다.
한 가지 짚고 가겠습니다. 라운드하며 받는 레슨을 우리나라에서만 '필드 레슨'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는 미국처럼 페어웨이 레슨이라고 합니다. 보통은 프로가 9홀만 지도합니다. 그런데 저는 18홀을 손님과 똑같이 치면서 레슨합니다. 그러다 보니 제 실력도 여실히 탄로 납니다. 1년간 병치레하느라 힘도 없고 감각도 없고 골프채는 남의 것입니다. 하지만 끝까지 같이 보조를 맞추는 데 의미를 둡니다. 골프는 옆에서 말로 하는 게 아니라 같이 쳐봐야 보이는 게 있기 때문입니다.
골프를 마치면 늦어도 3시입니다. 다시 연습장으로 가서 못다 한 레슨을 하며 문제점을 고쳐나갑니다. 그리고 숙소에서 삼겹살 파티를 했습니다. 로컬 직원들과 기사까지 함께한 자리 — 저에게는 거의 1년 만에 함께하는 파티였습니다.
Day 3 — 퍼팅의 답은 그네에 있었다
셋째 날은 저의 옛 터전인 베버리 골프장으로 갔습니다. 18홀 코스인데, 프라데라를 만든 사람이 여기도 만들어서 코스 성격이 비슷합니다.
그리고 이날, 이분이 클락까지 온 이유였던 퍼팅의 원인을 완전히 잡았습니다. 답은 허무할 만큼 단순했습니다.
그네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네가 뒤로 갔으면, 갔던 그 길을 그대로 되돌아옵니다. 퍼터도 똑같습니다. 백스트로크로 갔다가 되돌아오는 과정이 있고, 그 과정에서 맞는 터치감이 올려 맞기도, 때려 맞기도, 밀려가기도 합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상식이라 다들 묵과해 버립니다. 이분도 그랬습니다. 백스트로크 후 돌아오는 과정을 생략하고, 우측으로 갔으니 그냥 다시 때리거나 밀었습니다. 그 와중에 헤드가 지나가야 할 길을 벗어나거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건드리게 되고, 결과가 나쁘니 퍼팅에 대한 나쁜 기억만 쌓입니다. 그 나쁜 기억이 압박감이 되어 매번 짧게 떨어졌던 것입니다.
이 점을 고쳤더니, 솔직히 말해 저보다 잘했습니다. 옆구리에 포인트를 둔 비거리 향상은 이제 몸에 익었고, 퍼팅이 안정되더니 — 이날 베버리에서 77타를 쳤습니다. 한두 번 쳐봤다던 70타대에, 클락에 온 지 사흘 만에 다시 들어간 것입니다.
Day 4 — 뒤죽박죽이 된 마지막 라운드, 그리고 배웅
마지막 날입니다. 10년 만에 들른 클락에서 하룻밤은 자야 하지 않겠냐며, 이분은 전날 클락에서 가장 비싼 메리어트 호텔에서 일박을 했습니다. 이날은 토요일이라 아라얏 코스를 쳐보려 했는데 — 아뿔싸, 제가 미리 체크를 안 해서 망했습니다. 주니어 토너먼트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또 피나투보 코스로 갔습니다. 기분이 안 좋았을 텐데 내색하지 않아서 고마웠습니다.
마지막 날의 과제는 전날 서로 의논해 정해둔 것이었습니다. 엉성하게 잡은 그립을 고치는 것. 그립이 정통적 방식이 아니면 스윙폼도 이상해집니다. 몸통 같은 큰 근육을 매번 억지로 움직여 18홀 내내 노가다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그립만큼은 프로들이 하는 것처럼 하라고 타일렀습니다. 뉴트럴 그립으로 고쳤더니, 그동안 잘 안 되던 코킹이 됐습니다. 그립과 코킹의 상관관계는 반드시 익혀야 하는 공식입니다. 싱글 플레이어가 되려면 이런 구성 요소가 갖춰져야 합니다.
다만 그립을 바꾸고 코킹을 접목하다 보니 마지막 라운드는 뒤죽박죽이 된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손님이 먼저 말해주었습니다. "4일이 짧은 거지, 가르치는 방법이 문제였던 게 아닙니다." 스윙을 바꾸는 중간에는 원래 무너집니다. 그 무너짐을 지나야 다음 단계가 옵니다. 그걸 이해해 주는 손님이었습니다.
프라데라 로컬 숙소에서 샤워를 하고 일찍 앙겔레스 코리아타운으로 갔습니다. '고향식당'이라는 한식당인데, 음식이 전반적으로 달긴 하지만 조리를 하는 제 입맛에도 괜찮은 집이라 이것저것 엄청 시켰습니다. 저와 손님, 기사, 그리고 제 비서까지 넷이서 푸짐하게 먹었습니다. 그동안의 가르침에 감사하다며 손님이 식비를 냈고, 마사지 2시간도 선물해 주었습니다. 밤 11시 30분, 클락 공항에 모셔다 드렸습니다. 겨울에 다시 오마 — 약속을 하고 공항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1년 만에, 1년 전과 같은 일정을 마쳤다
이 문장을 쓰려고 이 글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병원을 오가던 1년을 지나, 저는 다시 공항 BAY 5 기둥 앞에 서서 손님을 맞았고, 아침 8시에 함께 밥을 먹고, 18홀을 같이 걸었고, 밤에 공항으로 배웅을 했습니다. 1년 전과 똑같은 일정입니다. 그 똑같음이 저에게는 회복의 증거였습니다.
그리고 이 4일은 전지훈련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광고 문구가 아니라, 날짜와 타수가 있는 기록입니다.
남은 두 분의 문의도 결실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겨울, 그 약속이 지켜지기를 기다립니다. 클락의 겨울은 건기라 골프에 더 좋은 계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