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인데 비가 얼마나 오나요? 골프는 칠 수 있나요?"
6월이 되면 이 질문이 부쩍 늘어납니다.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저는 6월 29일 클락으로 향했습니다. 30일부터 웹사이트를 통해 문의 주신 한 분의 훈련이 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의 1년 넘게 서울에 머물다 맞이한 여름에, 또 뜨거운 나라 필리핀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공항 밖을 나서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습니다. 오후 내내 골프장에서 비 그치기만을 기다렸지만 비는 계속 내렸습니다. 내일부터 훈련에 들어갈 손님 걱정이 앞섰습니다. 25년을 이곳에서 지냈어도, 손님 오시기 전날 내리는 비는 여전히 신경이 쓰입니다.
클락의 월별 기온과 강수일수, 시즌별 전략은 날씨 완전 가이드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이 글은 그 가이드의 우기 실전편입니다. 우기에 이미 오기로 하셨거나, 올까 말까 고민 중인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클락의 우기, 비는 정해진 시간에 온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기라고 해서 하루 종일 비가 오는 것이 아닙니다.
6월부터 9월까지 클락의 비는 보통 오후 4시부터 다음 날 새벽 사이에 내립니다. 몇 년을 지켜봐도 이 패턴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즉 아침에 티오프해서 오후 서너 시 전에 라운드를 마치는 일정이라면, 우기에도 골프는 대부분 문제가 없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도착 다음 날인 30일부터는 우기인데도 비가 더 이상 내리지 않았고, 오히려 따가운 햇볕에 양팔과 얼굴이 붉게 익어버렸습니다. 우기의 클락에서 제일 조심해야 할 것이 비가 아니라 자외선이라고 하면, 처음 오시는 분들은 잘 믿지 않습니다.
날씨 앱이 자주 틀리는 이유 — 하늘을 읽어라
미리 말씀드리면, 클락에서 날씨 앱의 시간별 강수 예보는 자주 빗나갑니다. 앱에 비 표시가 떠 있어도 골프장은 쨍쨍하고, 맑음이라던 날 스콜이 지나가기도 합니다. 앱이 엉터리라서가 아니라, 이곳 비의 성격이 예보라는 도구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열대 지방의 우기 비는 한국의 장마처럼 넓은 지역을 덮는 비가 아닙니다. 강한 햇볕이 지면을 달구면 뜨거워진 공기가 수직으로 솟구치며 그 자리에서 적란운을 만들고, 그 구름이 자기 아래에만 비를 쏟아붓습니다. 이것이 스콜(squall), 이른바 국지성 대류성 강우입니다. 구름 하나의 폭이 몇 킬로미터에 불과하니, 동네와 동네 사이에도 비가 내리고 안 내리고가 갈립니다. 앙겔레스 시내는 물벼락인데 프라데라는 마른 페어웨이인 날이 실제로 흔합니다. 골프장 한 곳 단위로 비를 맞히는 예보란 애초에 불가능한 동네인 것입니다.
그래서 앱은 태풍 접근 같은 큰 흐름을 확인하는 용도로 쓰고, 그날그날의 비는 하늘을 읽는 것이 정확합니다. 25년간 제가 몸으로 익힌 공식은 이렇습니다.
거꾸로 기억하기 쉬운 만큼, 처음 오시는 분들께 꼭 알려드리는 클락의 역설입니다.
비가 와도 30분이면 친다 — 배수의 힘
프라데라 베르데와 베버리 골프장은 배수 시설과 코스 관리가 훌륭한 편입니다. 밤새 비가 쏟아져도 아침이면 코스가 살아나고, 라운드 중 스콜이 지나가도 30분이면 다시 칠 수 있습니다. 이건 골프장 홍보 문구가 아니라, 두 골프장에서 클럽 프로로 일하며 매일 코스를 밟아본 사람의 경험담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 클락 지역의 공기는 건조합니다. 바닷가 수빅까지 가야 습도 때문에 후덥지근해지지, 팜팡가주는 비가 내려도 끈적이지 않습니다. 한국의 장마철 같은 눅눅함을 상상하고 오시면 오히려 놀라는 부분입니다.
태풍이라는 놈은 어떻게 태어나는가
태풍의 경로와 클락이 비교적 안전한 지리적 이유는 날씨 완전 가이드에서 다뤘으니, 여기서는 현지에서 지내며 알게 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태풍은 필리핀 동남쪽, 민다나오 인근의 따뜻한 바다에서 태어납니다. 수온이 26~27도를 넘는 열대 해상에서 바닷물이 증발하며 막대한 수증기를 하늘로 올려보내고, 그 수증기가 응결하면서 내놓는 열을 연료 삼아 저기압이 소용돌이로 자라납니다 — 이것이 태풍의 발생 원리입니다. 필리핀 동쪽 서태평양은 세계에서 이 조건이 가장 잘 갖춰진 바다라, 여름마다 한국으로 올라가는 태풍들도 대부분 이 근해에서 만들어집니다.
다행히 이렇게 만들어진 태풍은 팜팡가주 내륙과는 잘 겹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기에도 자신 있게 골프를 오시라고 권합니다. 다만 — 정직하게 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태풍이 우기와 한번 겹치면 그때는 매일 비가 내립니다. 저는 그것을 몸으로 배웠습니다.
6년 전, 그 모녀 이야기
앙겔레스 시내 한복판에서 그물망 연습장과 숙소를 운영하던 시절입니다. 대학생 딸과 중년의 어머니, 모녀가 한 달 일정으로 전지훈련을 들어왔습니다. 하필 태풍이 겹친 주간이었습니다.
14일 동안 필드를 다섯 번밖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골프장들이 모두 문을 닫았는데, 마침 코리아 C.C. 한 곳이 문을 열었다기에 "비를 맞고라도 치겠다"며 나섰습니다. 3번 홀 언덕 위에 올라서는 순간 천둥이 치더니, 30여 미터 옆에 낙뢰가 떨어졌습니다. 두 모녀는 펄쩍 뛰며 도망쳤고, 다음 날 남은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한국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비 오는 날이면 가끔 그 두 분이 생각납니다. 필드를 못 나가는 날마다 주구장창 연습장에서 공만 치고, 저녁이면 어머님과 저는 삼겹살에 소주를 기울였습니다. 그때는 미안하고 난감한 시간이었는데, 이제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2주가 저에게 남긴 교훈이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우기에 클락 골프를 계획하신다면
마닐라 쪽은 비가 잦습니다. 하지만 클락은 우기라고 해서 늘 비가 오는 곳이 아닙니다. 오후 4시 이전에 라운드를 마치는 일정, 배수 좋은 골프장, 그리고 아침 하늘을 읽는 요령 — 이 세 가지면 우기의 클락은 오히려 한산하고 시원한 골프의 계절이 됩니다. 우기가 왜 골퍼에게 좋은 시즌인지는 7·8월 우기 골프 가이드에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단기로 오시는 분들께 한 가지만 권합니다. 출발 전에 필리핀 남쪽 해상에서 태풍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뉴스가 있는지 한 번쯤 확인하고 오십시오. 태풍 소식이 없다면, 우기의 클락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면 일정을 며칠 미루는 것이 6년 전 그 모녀 같은 아쉬움을 만들지 않는 길입니다.
날씨는 하늘의 일이지만, 25년을 이곳에서 지낸 사람이 일정을 봐드리는 것은 사람의 일입니다. 우기 일정이 고민되시면 언제든 물어봐 주십시오.